- 등록일2025.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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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7일, 그룹 뉴진스가 제이팝 유닛밴드 요아소비의 내한 콘서트에서 게스트로 무대에 올랐다. 이날 뉴진스는 자신들의 곡 ‘하우 스위트(How Sweet)’를 부르며 무대 위에 등장했다. 이들은 “다 같이 인사드릴까요?”라며 다 함께 “안녕하세요”라고 외쳤다.
다만 멤버들은 그룹명 ‘뉴진스’를 언급하지 않았다. 하니, 혜인, 다니엘, 민지, 해린이라고 각자 자신의 이름만 언급하며 소개했다. 이들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그룹명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어도어와의 전속계약 해지 발표 후 분쟁을 겪고 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뉴진스는 지난 11월 28일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이튿날인 11월 29일 0시부터 전속계약을 해지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들은 어도어에 시정을 요구했던 사항들이 개선되지 않았다면서 “어도어는 뉴진스를 보호할 의지도 능력도 없다”고 했다.
다니엘은 “전속계약이 해지되면 저희 5명은 어도어 소속 아티스트가 아니게 될 것”이라며 “어도어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진정으로 원하는 활동을 해나가려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약속돼 있고 계약된 스케줄은 그대로 진행할 예정”이라며 “계약된 광고도 예정대로 전부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리 계약된 일정들을 소화하지 않을 경우 또 다른 법적 분쟁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에 덧붙인 말로 추측된다.
뉴진스의 전속계약 해지 발표는 한국 연예계에서 이례적인 사례로 꼽힌다. 무엇보다 대개 위약금 분쟁으로 촉발됐던 다른 아티스트와 소속사 간 갈등과는 다르다. 통상적으로 정산 등에서 부당한 처우에 반발한 아티스트들이 들고 일어나는 경우가 많았지만, 어도어는 뉴진스 활동 첫해 52억원을 정산해주는 등 이런 문제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돈’보다는 민희진 전 어도어 대표를 따르기 위한 ‘의리’에 기반한 행동이라는 분석이 다수다. 일명 ‘뉴진스 맘’으로 알려진 민희진 전 대표는 어도어 모기업 하이브와 지난 4월부터 갈등을 빚고 있다. 그간 민희진 전 대표를 지지한 뉴진스는 대표이사직에서 해임된 그의 복귀를 직접적으로 요청하기도 했다.
뉴진스의 ‘독립선언’이 매끄럽게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아티스트가 의무 불이행을 이유로 소속사와의 계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한 사례가 없었다. 뉴진스가 만약 소송에서 진다면 수천억원에 달하는 위약금을 물게 될 가능성이 꽤 있다.
아티스트 일방 해지 가능할까
기획사의 심각한 의무 불이행 땐 가능
아티스트가 일방적으로 소속사와의 전속계약을 해지하려면 근거가 있어야 한다. 뉴진스는 ‘의무 불이행’을 근거로 들었다. 뉴진스는 “전속계약에는 어도어가 계약상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우리가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조항이 분명히 기재돼 있다”며 “전속계약서에 명시된 대로 어도어·하이브와 함께 일해야 할 이유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가수가 키워준 소속사를 상대로 전속계약 해지 통보를 할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가능하다’는 게 법조계 다수 의견이다. 최준영 법무법인 대건 대표는 “계약 해지를 통보한 시점부터 효력이 발생하며 소송 결과에 따라 통보 시점부터 소급해 적용한다”며 “소속 아티스트가 전속계약 해지를 통보하는 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밝혔다.
다만 근거가 중요하다. 뉴진스가 어도어에 보낸 내용증명에는 ▲하니에게 ‘무시해’라고 발언한 매니저의 공식적인 사과 ▲동의 없이 노출돼 사용된 동영상과 사진 등 자료 삭제 ▲음반 밀어내기로 뉴진스가 받은 피해 파악과 해결책 마련 ▲신우석 돌고래유괴단 감독과의 분쟁과 이로 인한 기존 작업물이 사라지는 문제 해결 ▲뉴진스의 고유한 색깔과 작업물을 지킬 것 등의 내용이 담겼다.
뉴진스는 이를 지키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만 어도어 반박도 만만치 않다. 어도어는 “아티스트가 전속계약 위반이라고 주장하는 상당수 사안들은 어도어가 아닌 제3자의 언행에 관한 것”이라며 “제3자로 하여금 아티스트가 요구하는 사항들을 그대로 이행하도록 강제할 방법이 없는,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는 것들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전속계약에서 중요한 내용이라고 할 수 있는 연예 활동의 섭외·교섭이나 지원, 대가의 수령, 정산 및 정산자료 제공 등을 충실히 이행했다”고 밝혔다. 예를 들어 아일릿 매니저가 뉴진스 멤버 하니를 겨냥해 “무시해”라고 말했다는 의혹 제기에 대해 “하니가 문제를 제기했을 때부터 해당 레이블에 강력하게 항의하기 위해 사실관계 확인과 근거 확보에 노력했다”며 “상황이 객관적인 근거자료로 확인되지 않아 안타깝다”고 밝혔다.
업계는 뉴진스의 일방적인 ‘퇴사’ 통보에 우려를 보낸다. 한국연예제작자협회(연제협)와 한국매니지먼트연합(한매연) 등 주요 단체는 ‘뉴진스가 생떼 같은 무책임하고 악의적인 터무니없는 주장으로 K팝 근간을 뒤흔들 수 있는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며 ‘뉴진스는 어도어와 화해하고 정상적인 활동으로 돌아가라’는 내용의 성명을 잇달아 발표했다.
한매연은 국내 대중문화 산업이 ‘선투자 후회수’ 원칙으로 이뤄진 부분을 언급했다. 한매연은 “투자를 통해 신인을 키워낸 회사들은 최소한 투자금 이상 수익을 만들어내기 전까지는 해당 아티스트를 최대한 보호해 계약을 잘 유지하며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 최대 과제”라며 “각종 아티스트와 소속사 간의 분쟁이 발생할 경우 철저하게 ‘을’의 입장으로 전속계약 유지와 보존을 바랄 수밖에 없는 입장이지만, 악의적으로 계약을 해지하고자 하는 경우 최종적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 이외에 계약을 유지하기 위한 어떤 조치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호소했다.
피할 수 없는 법적 공방
어도어 “전속계약 유효 확인 소 제기”
뉴진스는 어도어에 전속계약 해지를 통보하며 전속계약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등 법적 조치를 하지 않았다. 계약 해지는 일방의 의사 통지가 도달하면 효력이 발생하는 것이 원칙이다. 뉴진스는 어도어의 의무 위반을 이유로 전속계약 해지를 통지했고, 멤버 5명 서명이 담긴 통지가 어도어에 도달함으로써 전속계약 효력이 없어졌다고 주장했다. 이달의소녀 출신 츄, 피프티피프티 사례처럼 소속사와 다툼이 있을 때 ‘전속계약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부터 내는 게 일반적이다. 뉴진스의 행보를 두고 의외라는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無소송’ 해지는 멤버 입장에서는 기왕 법적 분쟁으로 갈 것이라면 어도어에 공(소송 시작)을 넘기는 게 낫다고 판단한 듯 보인다. 또한 뉴진스가 가처분을 신청했다 기각될 경우 어도어가 전속계약을 풀어줄 때까지 발이 묶이게 되는 만큼, 이런 위험을 사전에 피하려는 포석일 수 있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어도어는 곧장 소송을 제기하며 예상대로 법적 소송전에 돌입했다. 어도어 측은 “소속 아티스트와의 문제가 법적 판단을 통해 해결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면서도 “회사와 아티스트 간의 전속계약이 일방의 주장만으로 가볍게 해지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아티스트는 물론 여러 이해 당사자들께 확인해드릴 필요가 있다는 판단하에 불가피한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어도어는 지난 12월 3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전속계약 유효 확인의 소를 제기했다고 알렸다.
어도어는 내년 3월 뉴진스의 국내 팬 미팅, 6~7월 정규앨범 발매, 8월 이후 월드투어를 계획 중이며 새로운 프로듀서도 섭외 중이라고 밝혔다. 2024년 4월 21일 어도어와 전속계약을 체결한 뉴진스의 계약은 데뷔일로부터 7년이 되는 날인 ‘2029년 7월 31일’까지 유효하다는 입장도 공고히 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법정 공방은 뉴진스가 불리해 보인다. 어도어는 회사의 지원과 투자가 있었으니 이것을 회수할 때까지 전속계약 해지가 불가능하다는 주장을 반복했다. 이와 관련 뉴진스는 어도어가 투자한 금액을 초과하는 이익을 돌려줬다고 항변한다.
그러나 법조계와 대중문화계는 계약 파기가 정당화되기 힘들다는 쪽에 무게가 실린다.
양지민 변호사는 “많은 법조인 의견은 소송으로 가면 뉴진스가 불리할 수 있다는 의견”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법리적으로는 양측이 전속계약 해지에 대한 상대방의 귀책 사유를 입증해야 하는데, 해지 사유는 뉴진스가 입증해야 한다.
연예계 분쟁을 다수 다뤄온 선종문 광야 대표변호사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인정한 표준계약서에 따라 기획사가 충실히 의무를 수행했음에도 불구하고 가수가 계약 기간 내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할 목적으로 위반한 경우 위약금을 물게 돼 있다”며 “뉴진스는 어도어가 의무를 충실히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만 기자회견에서 밝힌 내용을 보면 계약을 해지할 정도에 이를 만큼 기획사가 의무를 현저히 위반했다고 보기 힘들다”고 밝혔다.
천문학적인 위약금 규모
그간 수익 고려하면 최대 6000억원대
뉴진스가 ‘위약금 낼 생각이 전혀 없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서도 논란이다. 법조계에서는 어도어가 소송에서 이길 경우 위약금이 상당할 것으로 추산한다. 위약금은 아티스트가 전속계약 기한 내에 계약을 해지할 때 소속사에 배상해야 하는 금액이다. 법조계에서는 4500억~6200억원을 예상한다.
공정거래위원회 표준전속계약서를 보면 계약 해지 당시를 기준으로 직전 2년간 월평균 매출에 계약 잔여 기간 개월 수를 곱한 금액을 위약금으로 책정한다. 남은 계약 기간 동안 소속사가 얻을 기대수익을 위약금으로 보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어도어의 지난해 매출은 1103억원이다. 2022년 7월 데뷔한 뉴진스는 국내 아이돌 그룹 계약 기간이 7년인 점을 고려할 때 대략 5년의 계약 기간이 남아 있다. 어도어 역시 계약이 2029년 7월 31일까지 유효하다고 확인했다. 이에 따라 뉴진스 위약금이 최소 4000억원에서 최대 6000억원으로 추산된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민희진 대표 측에서 추산한 금액도 비슷하다. 언론에 공개된 민희진 전 대표 측 카톡 대화에 따르면, 뉴진스 멤버 1인당 월평균 매출액을 20억원으로 계산했을 때 남은 계약 기간 62개월을 곱하면 멤버 한 명당 물어야 할 위약금은 총 1240억원이 된다. 여기에 멤버 수 5를 곱해 최대 6200억원을 위약금으로 계산한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노종언 법무법인 존재 대표변호사는 “신뢰 관계 파탄에 따른 쌍방 귀책일 때는 양측의 위약금이 0원으로 책정되므로 뉴진스의 위약금도 0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어도어 측도 물러날 뜻이 없어 보인다. 뉴진스는 투자금 이상으로 벌어줬다고 하지만 어도어 입장에서 보면 뉴진스를 키우는 데 든 비용은 물론이고 이미 적잖은 손실을 입었다. 뉴진스 사태 이후 새로운 광고 계약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뉴진스 이탈에 따른 어도어의 수익 포기도 감안해야 한다. 한 엔터테인먼트 업계 관계자는 “민희진 전 대표 쪽의 뉴진스와 어도어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고 봐야 한다”며 “어도어는 위약금을 얼마나 받느냐에 집중할 것이고, 뉴진스 측도 이에 대비하는 법적 공방만이 남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수천억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액수지만 뉴진스처럼 팬덤이 많은 스타 걸그룹이 감당하기에는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있다. 이지훈 변호사는 “뉴진스 주장대로 뉴진스 연예 활동을 방해하는 어도어가 없어졌으니 매출이 늘어날 수 있다. 만약 지금보다 2배로 번다면 영업이익이 600억원이고 10년 일하면 6000억원이 된다. 10년만 열심히 하면 위약금 내는 건 전혀 문제없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민희진과 뉴진스의 컬래버레이션으로 어도어에 있을 때보다 월등한 수익을 보여준다면 어도어 때문에 방해가 됐다는 걸 증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대로면 이름은 무조건 바뀐다
소송 상관없이 ‘뉴진스’ 못 써
뉴진스는 “계약 의무를 위반하지 않았기 때문에 위약금을 지불할 의무가 없으며, 뉴진스라는 팀명도 온전히 확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확실한 사실은 소송 결과에 상관없이 독립하고자 한다면 뉴진스 이름을 사용하는 건 불가능하다. 뉴진스는 계약에 근거해 정당하게 해지를 통보했다고 하는데, 그럼 계약서에 있는 저작권, 이름에 대한 상표, 지식재산권들은 당연히 어도어에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뉴진스라는 이름을 반납해야 일관성 있는 주장이 된다.
뉴진스가 곧장 다른 기획사와 협력할 수 있을지도 관심사다. 하이브의 엔터 업계에서의 위상을 고려할 때 쉽지 않다고 본다. 한 엔터테인먼트 업계 관계자는 “뉴진스를 다른 기획사가 받아들인다면 엄청난 부담을 감당해야 할 것”이라며 “현 사태를 감안하면 당장 뉴진스와 협업하려는 회사가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최준영 대표변호사는 “적어도 민희진 풋옵션 소송 1심 결과라도 확인하고 계약 해지를 결정했어야 했다”며 “이런 선택은 어도어와의 법적 분쟁에서도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이지훈 변호사는 “팬덤이 있기 때문에 뉴진스는 이름 안 써도 된다. 경영 및 프로듀싱 능력이 있는 민희진과 만나서 새로 차리면 된다. 그러려면 계산해야 한다. (어도어와) 전속계약을 해지하려면 위약금을 줘야 한다”고 했다. 이 변호사는 또 “다른 그룹이 이런 방법을 따라 했다가는 경제적으로 패가망신할 수 있다. 뉴진스니까 하는 거지, 함부로 따라 하면 큰일난다”고 경고했다.